돈키호테 2권


 드디어 다 읽었다.
 1권과 2권 중 어느 것이 더 나은지는 아마 죽을 때까지 말하지 못할 것 같다. 둘 다 너무 압도적이어서.

 1권의 전략이 무협지적 판타지를 현실에 충돌시켜 풍자적 웃음을 유발하는 것이라면 2권은 김빼기 작전이다. 돈키호테는 여전히 아무 때나 무턱대고 싸움을 걸지만 실제 싸움은 한 번도 일어나지 않는다. (딱 한 번 예외가 있는데 이건 싸움이라기보다는 교통사고이다.)

  기본적으로 무협지이든 기사도 소설이든 판타지이든 로망스 형 서사는 10분에 한번씩 베드씬이 나오는 에로영화와 동일한 메커니즘을 갖고 있는데 돈키호테 2권은 비유하자면 10분에 한번씩 여자는 나오지만 매번 옷을 벗기 직전에 다른 일이 생겨 끝까지 가지 못하는 식이다. 세르반테스가 엄청 능수능란한 작가이기에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브뉘엘 영화 같았을 것이다.

게다가 1권이 기사도 소설의 반모델로 만들어진 것과는 달리 2권에서 참조 대상은 여전히 책이지만 그 책은 다름 아닌 돈키호테 1권이다. 슬픈 얼굴의 기사가 만나는 사람들은 전부 1권을 읽었고 1권에 나온 돈키호테의 행동 코드를 돈키호테에게 요구한다. 기사님께서 막판에 정신이 드는 것도 따지고보면 골의 아마디스나 분노한 롤랑이 아닌 자기자신이 롤모델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디스는 허구적 인물이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돈키호테 자신은 책속의 존재라는 것을 인지했으니. 과연 그의 유랑을 끝장내는 것은 돈키호테에게 '돈키호테 1권'을 소개해준 장본인 삼손 카라스코이니.
 
신기한 것은 2권이 어느 모로 봐도 체계적인 반소설이고, 아니 근대초엽의 반소설로도 모자라 완전히 20세기 아방가르드 예술의 길을 따르고 있는데도 읽고 나면 고전적인 스타일의 걸작을 봤을 때 같은 묵직한 감흥이 느껴진다는 점이다. 이게 거장의 힘인가?

 


 
 p.s. 일리아스 최대의 반전이 '트로이의 목마 따위는 나오지 않는다'와 '아킬레우스는 죽지 않는다'라면 돈키호테 1,2권의 최대 반전은 역시 '둘시네아는 등장하지 않는다'인듯.

by digression | 2009/11/06 16:23 | 문학, 책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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