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작과 진본, 저자의 아우라



호메로스의 문제를 두고 19세기에 분석론자들과 단일론자들이 박터지게 싸우고 있을때 단일론자들이 분석론자들을 비웃으며 했다는 농담.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는 호메로스가 쓴 게 아니라 호메로스와 동명이인인 다른 사람이 쓴 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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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다른 얘기일 수도 있지만 고대 이후로 근대까지 두 서사시의 판본수립 과정에서 학자들의 핵심 원칙은 '이 구절은 훌륭하니 호메로스의 것이고 저 구절은 후지니까 차후에 가필된 것'이었다. 지금 보면 웃겨보이지만 사실 이런 식의 사고방식은 판본수립이나 작품의 진위 여부 판정 때 아직도 흔히 발견되곤 한다.

1988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새 판본(현재 가장 권위있는 판본)을 만들면서 장-이브 타디에는 1987년에 발견된 프루스트의 최후 수정 판본 원고를 무시하기로 하는데 그때의 논거도 동일하다. '새로 발견된 원고의 변경사항은 후졌다. 그러니 프루스트가 더 살았다면 그걸 다시 삭제했을 것이다.'

문헌학과 문학비평은 분명 다른 분야인데 이게 이런 식으로 뒤섞여버린다.



1949년 발간된 랭보의 텍스트를 둘러싼 논쟁도 비슷한데... 요약하기 귀찮으니 그냥 예전에 번역하다가 관둔 책에서 관련구절을 '카피 앤 페이스트' 한다.


<영혼 추적>은 역설적이고 성가신 경우이다. 여기서 우리가 다루려는 것은 물론 랭보가 썼다고 전해지는 텍스트가 아니라(베를렌느는 랭보가 ‘영혼 추적’이라는 제목의 텍스트를 썼다고 전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이것이 정말 실전된 텍스트인지 아니면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어떤 텍스트의 다른 제목인지 알 길이 없다) 메르퀴르 드 프랑스 출판사에서 1949년에 출판된텍스트이다. 이 책의 출간이 몰고 온 파장으로 문단과 출판계는 발칵 뒤집혔고 ‘사건’의 전개과정에서 많은 ‘전문가들’과 기자들이 연루되었는데 25년전 미국에서 출간된 책에서 브루스 모리셋이 모든 사항을 워낙 꼼꼼히 정리해 놓았으므로 여기서 자세히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 책이 불어로 번역되지 않은 것을 보면 프랑스 출판계의 풍토가 어떤 분위기인지 알 수 있다). 그러니 간단히 주요 사항만 요약하도록 하자. 1949년 5월 19일 메르퀴르 드 프랑스에서 나온 <영혼 추적>이라는 소책자 한 권이 시판에 들어갔다. 저자는 랭보로 되어 있었고 파스칼 피아가 소개글을 썼는데 피아는 이것이 바로 베를렌느가 예전에 언급했던 ‘실전된’ 작품 「영혼 추적」이라고 밝혔다. 같은 날 <콩바>지(誌)의 문학란에서는 (당시 문학란의 책임자는 모리스 라도였다) 이 책의 출간을 알리며 텍스트의 일부를 전재(轉載)했다. 5월 21일 <피가로>지에는 아카키아-비알라와 니콜라 바타이유라는 배우 두 명이 자기들이 이 작품의 저자라고 주장하고 있다는 기사가 실렸다. 기사에 따르면 두 배우는 랭보의 시집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을 연극으로 개작해 올렸다가 ‘전문가들’에게 무시를 받은 전력이 있다. 그래서 이들은 자기들이 랭보에 대해 그렇게 문외한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몇 달 뒤에 이 텍스트를 쓰고는 전문가들을 골탕먹이고 망신을 줄 심사에서 그것이 랭보의 작품이라고 했다는 것이다(그들은 이 텍스트를 모리스 사이예에게 전해주었고 사이예는 피아에게 주었다). 피아는 이들의 주장을 즉시 반박하며 출판된 텍스트는 자기가 30년 전부터 알고 있던 원본과 동일하다고 단언했다(하지만 피아는 이 원본에 대해 더 설명하기를 거부했다). 이렇게 해서 피아의 주장(이 텍스트는 랭보가 쓴 것이다)과 아카키아와 바타이유의 주장(이 텍스트는 우리가 쓴 것이다)을 둘러싼 기나긴 논쟁이 시작되었다. 사이예와 나도는 이 책의 출판과정에 너무 깊이 연루되어 있어 자기들의 오류를 인정할 수 없었기에 피아의 편을 들었으며 원고를 읽고 랭보의 작품이라고 인정해 메르퀴르 출판사가 이 책을 출판하는데 지대한 역할을 했던 모리악과 뒤아멜도 이들의 입장을 지지했다. 양측의 주장을 간단히 정리해보자. 이 텍스트가 진본이라는 주장에는 외적 증거가 전혀 없다. 피아의 애초 주장과는 달리 랭보의 자필 원고도 없고 이것이 랭보의 작품이라는 직접적 증거도 없는 것이다. 대신 그들은 역설적이면서도 근거가 없지는 않은 의혹(나도는 “위작이라고 주장만 하지 말고 가짜라는 것을 증명하시오”라고 말한다)과 내재적 추정(랭보의 것이 아니기에는 이 텍스트는 너무나 랭보답다)을 내세운다. 반대로 위작이라는 주장 역시 물적 증거는 없지만 (출판의 대본이 된 ‘원고’를 설사 아카키아와 바타이유가 만든 것이 사실이라 해도 자기들이 창작한 것이 아니라 랭보의 진본을 옮겨 적은 것일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직관과 내재적 비평에서 나오는 확신(랭보의 작품으로 보기에는 너무 형편없다)이 있다. 이것은 앙드레 브르통의 입장으로 브르통은 5월 19일<콩바>지의 기사를 읽은 후 즉시 신문사에 편지를 보내 (그러니까 아카키아와 바타이유가 이 책이 위작이라고 주장하기도전에) 이 텍스트는 “경멸받아 마땅한 위작”이라고 주장한다. 브르통은 5월 28-29일자 <피가로>에서 이러한 입장을 재확인하며 6월에 나온 「현행범」이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을 구체화한다. 그의 논거는 크게 두 가지로 첫째 이 텍스트는 졸렬하고 상스러우며, 둘째 몇몇 구절은 랭보의 진본 작품과 토씨 하나 다르지 않고 똑같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작품이 모작이라고 보는 사람들의 주장은 거의 언제나 이 두 논거로 요약될 수 있다. 롤랑 드 르네빌(“랭보가 다른 데에서는 한 번도 하지 않은짓을 「영혼 추적」에서 했다고 믿기는 어렵다. 여기서 그는 자기의 예전 글들을 베끼고 있는 것이다” ― 5월 26일자<콩바>지), 장 콕토(“이 텍스트는 진본인가 위작인가? 내가 보기에는 공은 많이 들였어도 영혼이 담겨 있지 않은작품이다”), 5월 26일자 <프랑티뢰르>지에 글을 쓴 G.A.라는 사람[역주-앙드레 지드](“「영혼 추적」이 랭보의 작품일 수도 있다. 하지만 훌륭한 작품은 아니다. 여기에는 호흡, 숨결, 번뜩이는 이미지가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공들인 모작이거나 랭보의 졸작일 것이다”), 장 폴랑(“이 작품은 너무 들쑥날쑥하다. 은유는 거칠며 속되고 사유는 진부하다.<지옥에서 보낸 한 철>이나 <일뤼미나시옹> 수준의 이미지는 전혀 없다. 외딴 시골 사람이 현대시는 이럴 것이라고 상상한 모습 같다” ― 5월 26일자 <콩바>지), 뤽 에스탕(“기억을 되살려 랭보의 시를 캐리커쳐한 것”― 5월 29-30일자 <라크르와>지) 등의 의견이 모두 그러하다. 이러한 견해를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앙드레 모로아의 다음과 같은 평이다. “이것은 랭보의 작품이기에는 너무 랭보적인 것 같다. 여기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랭보의 표현이 모두 들어 있다. 설사 작가가 자기가 이미 했던 것을 반복한다 해도 이런 식으로 하지는 않는 법이다”(5월21일자 <트리뷘 드 파리>지). 이 텍스트의 진위를 알려주는 명확한 증거는 여전히 없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러한 관점은 정설이 되었다. 내가 아는 한 오늘날 <영혼 추적>이 진본이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두 배우의 주장이 승리를 거둔 것이다. 물론 이 사건으로 인해 그들은 평판이 떨어졌으며 애초의 집필 의도 역시 훼손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자기들이 랭보처럼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영혼 추적>을 썼다. 하지만 그들이 이 작품을 썼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인정해준 이유는 이 작품이 결코 랭보의 수준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인 것이다.

 (제라르 쥬네트, <팔랭프세스트>)



 어찌보면 문학 연구라는 것은 고대 그리스 시대에서 한 치도 발전하지 못한 듯.



by digression | 2009/11/01 06:11 | 문학, 책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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