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5월 25일
노무현 관련 글모음 (저장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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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나는 지금도 그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동교동에서 독일 〈슈피겔〉 지와 인터뷰를 하다가 비서관으로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그때 나는 “내 몸의 반이 무너진 것 같다.”고 했습니다. 왜 그때 내가 그런 표현을 했는지생각해봅니다.
그것은 우리가 함께 살아온 과거를 돌아볼 때 그렇다는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노 전 대통령 생전에 민주주의가 다시 위기에처해지는 상황을 보고 아무래도 우리 둘이 나서야 할 때가 머지않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러던 차에 돌아가셨으니그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나는 상주 측으로부터 영결식 추도사 부탁을 받고 마음속으로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지 못했습니다. 정부 측에서 반대했다고들었습니다. 그때 나는 어이없기도 하고 그런 일을 하는 정부에 연민의 정을 느꼈습니다. 마음속에 간직한 추도사는 하지 못한다고해서 없어지는 게 아닙니다. 영결식장에서 하지 못한 마음속의 그 추도사를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의 추천사로 대신합니다.
노무현 대통령 당신, 죽어서도 죽지 마십시오. 우리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노무현 당신이 우리 마음속에 살아서 민주주의 위기, 경제 위기, 남북관계 위기, 이 3대 위기를 헤쳐 나가는 데 힘이 되어주십시오.
당신은 저승에서, 나는 이승에서 우리 모두 힘을 합쳐 민주주의를 지켜냅시다. 그래야 우리가 인생을 살았던 보람이 있지않겠습니까. 당신같이 유쾌하고 용감하고, 그리고 탁월한 식견을 가진 그런 지도자와 한 시대를 같이했던 것을 나는 아주 큰보람으로 생각합니다.
저승이 있는지 모르지만 저승이 있다면 거기서도 기어이 만나서 지금까지 하려다 못한 이야기를 나눕시다. 그동안 부디 저승에서라도 끝까지 국민을 지켜주십시오. 위기에 처해 있는 이 나라와 민족을 지켜주십시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접하고 우리 국민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고 조문객이 500만에 이르렀습니다. 나는 그것이 한과 한의 결합이라고 봅니다. 노무현의 한과 국민의 한이 결합한 것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억울한 일을 당해 몸부림치다 저세상으로 갔습니다. 우리 국민들도 억울해하고 있습니다. 나도 억울합니다. 목숨 바쳐온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해 있으니 억울하고 분한 것입니다.
우리의 민주주의가 어떻게 만든 민주주의입니까. 1980년 광주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까. 1987년 6월항쟁을 전후해서 박종철 학생, 이한열 학생을 포함해 민주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까.
그런데 독재정권, 보수정권 50여 년 끝에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가 10년 동안 이제 좀 민주주의를 해보려고 했는데 어느새되돌아가고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되돌아가고 경제가 양극화로 되돌아가고, 남북관계가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나는 이것이꿈같습니다, 정말 꿈같습니다.
이 책에서 노 전 대통령은 “각성하는 시민이어야 산다.”, “시민이 각성해서 시민이 지도자가 될 정도로 돼야 한다.”고말했습니다. 이것은 내가 말해온 ‘행동하는 양심’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 모두 행동하는 양심, 각성하는 시민이 됩시다. 그래야이깁니다. 그래야 위기에 처한 민주주의를 살려낼 수 있습니다.
그 길은 꼭 어렵지만은 않습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행동하면 됩니다. 무엇보다 바르게 투표하면 됩니다. 인터넷같은데 글을 올릴 수도 있습니다. 여론조사에서 민주주의 안 하는 정부는 지지 못한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위기일 때,그것조차 못한다면 좋은 나라와 민주국가 이런 말을 우리가 할 수 있겠습니까.
국민 여러분,
노무현 대통령은 타고난, 탁월한 정치적 식견과 감각을 가진 우리 헌정사에 보기 드문 지도자였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어느 대통령보다도 국민을 사랑했고, 가까이했고, 벗이 되고자 했던 대통령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항상 서민 대중의 삶을 걱정하고 그들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을 유일하게 자신의 소망으로 삼았습니다.노무현 대통령은 부당한 조사 과정에서 갖은 치욕과 억울함과 거짓과 명예훼손을 당해 결국 국민 앞에 목숨을 던지는 것 외에는자기의 결백을 밝힐 길이 없다고 해서 돌아가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다 알고 500만이 통곡했습니다.
그분은 보기 드문 쾌남아였습니다. 우리는 우리 시대에 인간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노무현 대통령과 같은 훌륭한 지도자를 가졌던 것을영원히 기억해야겠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바라던 사람답게 사는 세상, 남북이 화해하고 평화적으로 사는 세상, 이런 세상을 위해서우리가 뜻을 계속 이어가서 끝내 성취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렇게 노력하면 노무현 대통령은 서거했다고 해도 서거한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우리가 아무리 500만이 나와서조문했다고 하더라도 노무현 대통령의 그 한과 억울함을 푸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그분의 죽음은 허망한 것으로 그치게 될 것입니다.우리 모두 노무현 대통령을 역사에 영원히 살리도록 노력합시다.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여러분,
나는 비록 몸은 건강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마지막 날까지, 민주화를 위해 목숨 바친 사람들이 허무하게 생각하지 않도록, 민주주의를지키기 위해 내가 할 일을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연부역강(年富力强)하니 하루도 쉬지 말고 뒷일을 잘해주시길 바랍니다. 나와노무현 대통령이 자랑할 것이 있다면 어떤 억압에도 굴하지 않고 민주주의, 서민경제, 남북평화를 위해 일했다는 것입니다. 이제후배 여러분들이 이어서 잘해주길 부탁합니다.
나는 이 책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가 그런 후배 여러분의 정진에 큰 보탬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인터뷰하고 오연호 대표 기자가 쓴 이 책을 보니 정치인 노무현은 대통령이 되기 전후에 국민의 정부와 김대중을 공부했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이 책으로 참여정부와 노무현을 공부하십시오.
그래서 민주정부 10년의 가치를 재발견해 계승하고, 극복할 것이 있다면 그 대안을 만들어내서, 결국 민주주의를 위기에서 구하고더욱 풍요롭게 만들어가길 부탁드립니다. 우리가 깨어 있으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죽어서도 죽지 않습니다.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 김대중
[시론] 한 시대의 종말을 애도함 / 김상봉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356772.html
그가 마을 뒷산 절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한 시대가 끝났음을 알았다. 그는 바로 우리 시대였다.누구도 그처럼 치열하게 자기를 시대 속에 던져 시대와 하나 된 삶을 살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가 보여준 숭고, 그가 넘지 못한한계 그리고 비극적 종말이 모두 그 개인의 것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숭고였으며, 우리 자신의 한계가 아니었던가. 그리고 그의 이비극적인 종말은 시대가 길을 잃고 낭떠러지에서 추락한 것이 아닌가?
1979년 부마항쟁으로장전되고, 80년 광주항쟁을 통해 발사된 시대, 모든 불의한 것들에 대한 광기 어린 분노가 총알처럼 아스팔트 위를 질주하던시대가 불러낸 사나이가 바로 노무현이었다. 그는 광주항쟁 이듬해 이른바 부림 사건으로 체포되고 고문당해 만신창이가 된 부산의대학생들을 변호사로서 만나면서 처음 역사에 발을 들여놓았다. 불의에 대한 끓어오르는 분노, 타인의 고통에 대한 순수한 공감이아무 걱정 없던 세무 전문 변호사를 역사의 가시밭길로 불러내었던 것이다.
그 뒤 그는 역사의 부름에 언제나 자기의 전 존재를 걸고 치열하게 응답했던 소수의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다. 그 치열함이 우리를감동시켰고, 그 감동이 그를 끝내 이 나라의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까지 밀어올렸다. 그것은 그의 명예이기 이전에 한 시대가 보여줄수 있는 치솟은 숭고였으니, 그는 우리의 자랑이었다.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나는 역사가 이렇게 한 걸음 더 진보한다고 믿을 수 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5년 뒤 그가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라는 짐을 국민에게 떠넘기고 청와대를 떠날 때, 내겐 더 이상 그에게 실망하고 분노할 기력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다만 그가 고향마을에 큰 집을 지어 이사하는 것을 보고, 잠깐 그 많은 공사비가 어디서 나왔을까 궁금했을 뿐.
그런데 그가 고향 뒷산 절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왜 이렇게 내가 살아 있는 것이 부끄러워지는가. 그는자기를 던졌는데 나는 왜 구차하게 살아 있는가? 그의 시대는 나의 시대이기도 했으며, 그의 실패는 나의 실패이기도 했는데, 왜그만 가고, 나는 여기 남아 있는가.
내가 그에게 동의하든 하지 않든, 그는 치열했다. 이를테면 그가 권력이 청와대에서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말했을 때, 나는 깊이좌절하고 실망했으나, 생각하면 그것은 그 개인의 한계가 아니라 우리 시대의 한계였다. 자본이 절대 권력이 된 시대에 많은사람들이 그 한계 앞에서 변절하거나, 세치 혀로 한계를 넘어갈 때, 그는 자기 방식으로 시대의 한계와 끊임없이 부딪혔고, 결국좌절했다. 그가 곧 한 시대였으니 시대의 좌절이 그에게 치명적 타격으로 돌아온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보라,한때 우리의 사랑을 받았던 소설가가 다른 것도 아니고 광주를 팔아 노벨상을 구걸하고 있을 때, 노무현은 모욕과 멸시 속에서구차하고 더럽게 살기보다 깨끗이 파멸을 선택함으로써, 우리 시대가 비록 실패한 시대이기는 했으나, 적어도 비겁한 시대가아니었음을 온몸으로 증명했다.
우리 시대가 오월 광주의 죽음에서 시작되었듯이, 모든 새로운 시대는 죽음 위에서 잉태된다. 죽지 않아야 할 사람이 죽었으니머지않아 운명의 여신은 그 핏값을 받기 위해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그리고 그를 죽음으로 몰아간 자들이 그에게 적용했던 그엄격한 도덕적 잣대로 그들을 그리고 우리를 심판할 것이다. 그 심판을 피하려면 우리 자신이 정화되어야 할 것이니, 역사는 그렇게쇄신되는 것이다.
뜨겁게 사랑했으므로 내가 미워했던 마음의 벗이여, 잘 가오. 그대 영전에 오래 참았던 울음 우노니, 그대 나 대신 죽어, 내 마음에 영원히 살아 있으리.
허지웅 /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의 세상
http://ozzyz.egloos.com/4146666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은 한 가지 흠집을 무마하는데 열 가지 세계관을 내세워 낯빛 한 번 바꾸는 일 없이 스스로를 지켜낸다.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은 한 줌 봄바람에도 괴로워하고 슬퍼하고 원망하다 끝내 주변과 스스로를 망친다. 비아냥 섞인 세상의 손가락은주로 후자를 겨냥한다.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 자멸하는 순간, 세상의 손가락들은 가장 빠르고 침통하게 애도하는 방식으로 스스로를구제한다. 그렇게,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들이 조금씩 사라져간다.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 살아남기에 세상은 너무 어른스럽고,아프다. 언젠가는 그런 사람이 한 명도 남지 않게 될 것이다.
부디,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파괴하지 않아도 좋을 곳으로 가시길. 허지웅 드림.
파토 / [謹弔] 인간 노무현을 보내며
http://www.ddanzi.com/articles/article_view.asp?installment_id=255&article_id=4397
이제 글을 맺으며, 고인께 드릴 것이 있다. 이 모든 정신 없는 하루 동안의 비극 속에 엉뚱하게도 내가 가장 가슴 아팠던 것은, 고인이 투신 직전 동행했던 경호원에게서 담배 한 대를 찾았다는 이야기였다.
그 담배 한 대. 사형수에게도 허락되는 생애 마지막 담배 한 대조차도 주어지지 않은 죽음. 대한민국의 16대 대통령이자 우리 민주주의의 희망이었던 인간 노무현을 그렇게 보낼 수는 없다.
그래서, 비록 직접 드릴 수는 없지만 이렇게 글로써라도 권해 드리련다.
한대 붙이세요. 그리고 이제 푹 쉬세요. 빌어먹을 놈의 세상에서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게 마냥 헛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럼요.
딴지총수 / 내가 반했던 남자
http://www.ddanzi.com/articles/article_view.asp?installment_id=256&article_id=4398
그렇게 두 번의 만남에서 오갔던 말들은 이제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기억하는 건 하나 밖에 없다. 그는 진짜로, 씩씩한남자였다는 거. 그가 대통령으로 내린 판단 중 개인적으로 동의할 수 없고 지지할 수 없는 결정들도 많았으나 언제나 그를 좋아하지않을 수 없었던 건, 그래서였다. 정치고 뭐고 다 떠나 그는 내가 아는 한, 가장 씩씩한 남자였다. 스스로에게 당당했고 그리고같은 기준으로 세상을 상대했다. 난 그를 정치인이 아니라, 그렇게 한 사람의 남자로서 진심으로 좋아했다.
그런데 그가 투신을 했단다. 믿을 수가 없었다. 그의 죽음이 갑작스러워서는 아니다. 사람의 이별이란 게 그렇게 갑작스럽게닥친다는 걸, 이제는 받아들일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따지고 보면 그와의 첫 만남도 아무런 예고 따윈 없었으니까.
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건 그의 죽음 자체가 아니라 그 죽음의 방식이었다. 그는 어떻게든 돌아올 줄 알았다. 최근의 뉴스에별반 관심이 없었던 것도 그래서다.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난 그를 완전하고 흠결 없는 정치인으로 좋아했던 게 아니었기에. 뭐가어찌 되었든,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그는 그 나름의 방식으로 돌아올 거라 여겼다. 그는 내게 그만한 남자였다.
그런 그가 투신을 했단다. 투신이라니. 가장 시답잖은 자들에게 가장 씩씩한 남자가 당하고 말았다는 것만으로 충분히억울하건만 투신이라니. 그것만은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죽음이 아니라 그게 도무지 받아들여지지 않아 하루 종일 뉴스를 읽고 또읽었다. 그러다 투신 직전 담배 한 개비를 찾았다는 대목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 씩씩한 남자가, 마지막 순간에 담배 한개비를 찾았단다.
울컥했다.
에이 씨바... 왜 담배가 하필 그 순간에 없었어. 담배가 왜 없었냐고. 에이 씨바... 그거는 피고 갔어야 하는 건데.그때 내가 옆에서 담배 한 개비 건네줬어야 하는 건데. 그가 그렇게 가는 걸 말리진 못한다 하더라도 담배 한 개비는 피우고 가게해줬어야 하는 건데. 노무현은 그 정도 자격 있는 남잔데. 그 씩씩한 남자를 그렇게 마지막 예도 갖춰주지 못하고 보내버렸다는게, 그게 너무 속이 상해 눈물이 난다.
그에 대한 정치적 평가도, 정권에 대한 성토도 지금은 다 싫다.
지금은 그저 담배 한 개비를 그에게 물려주고 싶을 뿐이다...
그렇게 못했다는 게 너무 속이 상할 뿐이다...
그 담배 한 개비는 피고 갔어야 했는데...
그게 속이 상해 자꾸 눈물이 난다...
나머지는 다음에, 다음에 천천히 이야기하자...
딴지 편집부 /
http://www.ddanzi.com/articles/article_view.asp?installment_id=255&article_id=4385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들이 활개치는 세상에서, 한줌 부끄러움에 몸을 떨던 자 결국 그 자신을 버림으로써 마지막 남은 자신의 존엄을 지키다.
'인간 노무현'에 대한 추도사는 이 한줄로 족하리라.
'정치인 노무현'을 위한 추도사는 한줄로 부족하다.
지역주의, 권위주의, 보스정치, 계파정치에 맞선 그의 도전과 그 한계까지도, 그 자신이 마지막으로 남긴 유서에서 밝힌 대로 "먼 훗날 역사가 밝혀줄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딴지 편집부 일동진중권
http://www.newjinbo.org/board/view.php?id=discussion&no=34478
그를 처음 만난 것은 그가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섰을 때였습니다. 어느날 그의 열렬한 지지자인 이기명씨를 통해전화가 왔더군요. 제 칼럼을 보고 저를 한번 보고 싶다 한다고. 여의도의 한식집에서 점심을 같이 먹었습니다. 특별한 이야기는없었고, 제가 철학을 공부했다는 말을 들으셨는지, 상대주의와 절대주의의 대립이라는 철학적 아포리아에 관한 말씀을 꺼내시더군요.대화의 결론은, 자기 캠프로 와 줄 수 있냐는 것. 제 정치적 신념은 진보정당을 강화하는 데에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는없다고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나 같은 사람은 데리고 있느니 차라리 밖에서 더러 쓴 소리도 하면서 그냥 놀게 해주는 게아마도 더 도움이 될 거라고 덧붙였지요.
두 번째 만남은 민주당 대선후보로 결정된 후의 일이었습니다. 월간'인물과 사상'에서 제게 노무현 후보 인터뷰를 해 달라고 요청해왔습니다. 흔쾌히 응했고, 당시 민주당사로 찾아가서 1시간 반정도 인터뷰를 했습니다. 두 번째 만났을 때는 같은 편이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저를 대하시는 태도가 약간 차가웠지요. 나름대로준비를 해 간다고 해갔는데, 질문 몇 개가 마음에 안 들었던 모양입니다. "인터뷰를 그런 식으로 하면 안 되지요."라고공개적으로 면박을 주면서, 가끔 내 물음을 자기 스스로 고쳐서 묻고는 스스로 대답을 하기도 했습니다. 출판사에서 인터뷰를 풀어보내준 녹취록을 다듬어서 '인물과 사상'에 실었지요. 그 기사, 다시 한번 읽고 싶네요.
그후로는 만난 적이없습니다. 대통령이 된 후에는 부딪히는 일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이라크 파병 때에는 '부시의 푸들'이라고 강력히 비난을 하기도했었고, 김선일씨 참수 사건이 벌어졌을 때는 여기에 옮기기 힘들 정도로 격한 표현까지 했었지요. 총선 때에는 리틀 노무현이라불리는 유시민씨와 '사표 논쟁'을 벌이기도 했었고... 그가 한나라당과 싸울 때는 그를 지원하고, 그가 진보운동과 싸울 때는그를 비판하고... 전반적으로는 그가 내세운 '개혁'의 정신이 퇴색되어가는 것을 비판하는 논조를 유지했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그는 진보와 보수 사이에 끼어 집권 기간 내내 낮은 지지율로 고생을 해야 했지요.
그에 대해 내가마지막으로 공식적 언급을 한 것은 2007년 8월, 그러니까 그가 퇴임하기 반 년 전에 <서울신문>에 기고했던글입니다. 그때 노무현 전대통령의 인기는 바닥으로 떨어져 있는 상태였지요. 다들 노무현 비난에 정신이 없던 시절, 그 일방적매도의 분위기가 너무 심하다 싶어 그를 옹호하는 글을 올렸고, 그것은 그토록 투닥거리고 싸웠던 정적(?)에게 보내는 나의 마지막인사였습니다.
| 대통령 단상/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 | ||||
지금이야 대통령 씹는 게 ‘국민 스포츠’지만, 한때 그는희망이었다. 그의 지지자들이 비주류이던 그를 민주당의 대선 후보로, 나아가 대통령으로 만드는 드라마에는 감동적인 구석도 있었다.케네디가 TV 덕분에 대통령이 됐다면, 인터넷의 힘으로 대통령이 된 최초의 인물이 노무현. 그의 당선엔 역사적 의미까지 있다.노회찬 의원의 말대로 “노 대통령의 유일한 업적은 당선된 데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순수한 지표를 놓고 보자면,‘경제를 살리겠다.´는 한나라당의 구호는 무색해 보인다.1인당국내총생산(GDP)이 2만 달러에 달하고, 주가지수가 2000을 넘나든다. 그렇다고 인위적인 경기부양을 한 것도 아니다.한나라당이야 자기들이 경제를 살리겠다고 하나,10년 전에 나라경제를 말아먹은 분들이 버젓이 그런 얘기 하는 것을 들으면, 그얼굴 가죽으로 구두를 만들고 싶은 엽기적 충동을 느끼게 된다. 우울한 얘기지만, 앞으로 경제가 성장해도 삶은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1인당 GDP가 늘어날수록 삶은불안정해지고, 양극화는 심해질 것이다. 때문에 올해 대선에서 누가 권력을 잡든, 삶이 크게 바뀔 것이라 기대하지는 않는 게좋다. 희망이 크면 실망도 크고, 환상이 크면 환멸도 큰 법. 서민의 삶이 힘든 것은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나아가 국민대다수가 동의하는 정책의 필연적 결과다. 별로 인기는 없지만, 노무현정권이 한 일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사회 곳곳에서 ‘권위주의’를 무너뜨린 것은 그의 가장 큰 업적이다. 경제가 발전함에따라 사회는 커뮤니케이션의 양상을 바꿔야 한다. 지도자의 명령에 따라 삽질하던 시대의 권위주의는 창의력과 상상력이 곧 생산력이되는 미래에는 적합하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계급장 떼고 토론하려 드는 대통령의 체통 없는 태도에는 평가해줄 만한 구석이 있다. 사실 대통령 씹기가 국민스포츠가 된 것도 그것과 관련이 있다. 그러니 대통령은 너무 서운해할 것 없다. 사실 노대통령처럼 노골적으로 무시당한 대통령은 없을 것이다. 그를 향해 쏟아 부은 정치권의 험담은 이루 열거할 수 없을 정도. 그들은자신을 뭐라 평가할지 모르나, 내가 보기에 대한민국 정치권에서 여야를 통틀어 노무현만 한 교양 수준을 갖춘 사람은 유감스럽지만단 한명도 없다. 대선을 앞둔 정치권의 수준을 보라. 여당은 대통령 보고 탈당하라 해 놓고, 정작 탈당을 하니 자기들까지 덩달아탈당하는 코미디를 연출한다. 한나라당은 삽질하던 시대의 흘러간 유행가를 경제회생의 비책이라고 내놓고 싸움질에 여념이없다.2007년 대선은 2002년에 비해 수준이 대폭 떨어질 모양이다. 행사장에서 피켓 들고 폭행을 하는 행각. 적어도2002년 대선에 그런 추태는 없었다. 초기 노사모에는 건강함이 있었다. 하지만 대통령을 ‘감시’하겠다는 약속을 깸으로써 노사모는 친위대 수준으로타락해 갔다. 과거에 인터넷은 그의 가장 든든한 기반이었다. 하지만 거기서도 괜찮은 지지자들은 다 떨어져 나가고, 황우석을우상으로 떠받드는 정신 나간 이들만 남아 그들 특유의 고약한 매너로 주위 사람들에게 대통령에 대한 악감정만 부추기고 있다.대통령의 신세가 참으로 한심해졌지만, 그는 언젠가 다시 평가를 받을 것이다.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 2007/08/02 |
김규항 / 무사의 죽음
http://www.gyuhang.net/entry/%EB%AC%B4%EC%82%AC%EC%9D%98-%EC%A3%BD%EC%9D%8C-1?TSSESSIONgyuhangnet=7286023849904d8a1d3dffab1bb09198
어리석은 형제와 아내와 자식들이 연루된 일로
그의 오랜 정적들이 그를 죽이려 악귀처럼 달려들었다.
몇몇 옛 동지들이 그를 팔았고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신문들은 역사적 책임이라도 질세라
“국민의 가슴에 못을 박았다!” 고함치며 발을 뺐다.
신중하고 또 신중했어야 할 측근들은
“생계형 범죄”니 “순수한 정치 보복” 따위 모자란 말이나 일삼아
그를 더욱 헤어날 수 없는 수렁으로 밀어 넣었다.
노란 손수건을 든 모든 사람들은 그를 구하는 일보다는
그를 향한 제 감정에만 충실했다.
결국 그를 도울 아무 것도, 단 한 사람도 남지 않았다.
절대 고독 속에서
그는 깊은 침묵의 마지막 칼을 빼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모든 비루한 것들을 단번에 베어냄으로써
“자연의 한 조각”으로 돌아갔다.
무사의 죽음이었다.
사람들아,
그의 죽음 앞에서
한 달을 지속 못할 입에 발린 칭송도
싸구려 신파조의 추억담도 모두 접고
깊은 침묵으로 예를 갖추자.
순전한 이상주의자이던 시절 그가 꾸었던 꿈만을 되새기자.
듀나 /
http://djuna.cine21.com/bbs/view.php?id=main&no=166886
http://djuna.cine21.com/bbs/view.php?id=main&no=166619
1.
송내역 앞의 분향소에 다녀왔습니다. 자전거로 가서 도착했을 때는 12시 정도였는데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습니다. 광장 맞은편 롯데리아에 닿을 정도. 엄마 아빠 따라온 아이들도 있었고 아내 따라 나왔지만 중간에 안 되겠다고 줄에서 빠져나오는 남자도있더군요. 분향하고 방명록에 서명하고 꽃값으로 만원 기부했습니다. 뭔가 미진한 느낌입니다. 진짜 전경들과 몸싸움이라도 해야 속이풀릴지. 오늘 시청 앞은 어땠나요?
2.
조금 돌아서 왔는데 중간에 비가 오더군요. 흠뻑 젖었습니다. 막 샤워를 끝냈는데, 지금은 또 비가 그친 것 같군요. 타이밍이 좀 아슬아슬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주 안 맞았을 수도 있었죠.
...아, 다시 비가 와요. 또 그쳤네. 이제 다시 해가 뜨네요.
3.
모르겠습니다. 노무현의 인생은 실패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소위 '아트'는 될 수 있겠죠. 지금까지 나온 한국 대통령들 중 우리가공감할 수 있는 인물이 주인공인 전기물이 나올 수 있는 유일한 인물입니다. 누군가 만들지 모르죠. 그건 고대 그리스인들에게도익숙한 고전적인 비극이 될 겁니다.
소설가 김연수
http://larvatus.egloos.com/4148203
이젠 위로할 수조차 없어요.
낮부터 술에 취해서 하루를 보내고, 실연한 사람처럼 이런저런 추억을 떠올리며 또 하루를 보냈어요. 새벽에 그 바위 위에 혼자 서있는 기분이란 어떨까? 문득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가 사는 이 나라에서 고독이란 가장 경멸할 만한 감정이죠. 개성을드러내는 일은 문제적인 인물로 찍히는 지름길이죠. 모두가 입을 다물 때, 진실을 말하는 일은 혼자 잘난 척하는 일로 여겨지죠.바위 위에 혼자 서 있는다는 건 그런 뜻일 거예요. 온전히 개별적인 존재로 이 세상 전부와 맞선다는 것. 아무리 많이 배우고,아무리 많은 재산을 가졌어도 이 나라에서 사람들은 무리를 지어서 다니죠. 학연이나, 지연이나, 혈연으로. 원숭이들처럼, 모여서걸어다니죠. 우두머리를 중심으로. 그 대열에서 벗어나면 죽는다는 걸 본능적으로 아니까. 그게 쥐든, 개든, 다른 짐승들과마찬가지로. 그러므로 개별적인 존재로도 살아갈 수 있다면, 그 순간부터 짐승이 아니라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얘기겠죠. 하지만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슬픈 일인지 이제 조금씩 알겠네요. 희로애락의 근원을 알겠네요. 그 새벽의 바위 위에 서 있던 그사람을 누구도 위로할 수 없다는 그 자명한 사실이 나를 슬프게 하네요. 저기 사람들이 지나가네. 그렇게 지나가던 사람들 속에나도 있었다는 생각이 자꾸 드네요. 이젠 위로할 수조차 없네요.
# by | 2009/05/25 00:19 | memento mori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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